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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괴물

부산 위경만 (feat. 하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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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위경만은 주먹으로 알아주는 사내다.

그의 아들 위대한도 부산 통합 짱, 대가리로 레전드를 갱신했으니 지 아비의 타고난 남성성을 타고 난 것도 사실이다.

 

위경만이 조직을 창립한 이유에 대한 많은 썰들이 있다.

과연 그는 의인인가? 악인인가?

의인이라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970년대 부산의 조직을 주무른 건 칠성파였다.

 

칠성파가 활개를 칠 때 부산 남포동 시장 주변에서 자란 토박이 위경만을 포함해서 홍창수 등 초창기멤버들은 그들 만의 조직을 건설한다.

 

이러한 행동이 마치 지금의 위대한과 비슷한데 물론 위대한에 대해 많은 상인들은 안 좋은 이야기도 한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돈 몇푼 벌자고 다른 손님을 놓치게 만드는 위대한 같은 손님은 받기 싫을 거다.

 

아무튼 위경만은 당시 20대였고 지금의 부산 하고회 같은 그냥 동네에서 좀 치는 형들끼리 어울리는 모임이었다고 한다.

 

지금 위대한도 남포동에서 팝콘티비 방송을 하며 술집 밥집 이모들하고 격의없이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아비 위경만도 처음에는 그런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한국 gdp나 경제순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시대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지금보다 소상공인에 대한 조직들의 탄압이 심했고 일명 자릿세 명목으로 상인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현금을 수금하는 일이 잦았다.

위경만이 조직을 창설한 시초는 위대한을 주축으로 한 지금의 부산 하고회처럼 당시 동네 젊은이들이 조직에 맞서 남포동 상인들을 지켜주다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연합체가 결성된 이후 부산에서 형, 동생, 친구들 영입하여 세를 불리고 다른 조직들과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조직으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남포동 주변 시장상인들이 위경만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먹을거 주고 마치 야인시대 종로 2정목 같이 한게 괜히 그런게 아니라는 말도 한다.

 

물론 위경만이 김두한처럼 미화되고 그를 칭송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시장 상인들을 통해 들려 오는 한 가지 측면에서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호의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산에 거주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위경만이 전국구 레벨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따라서 부산에서는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위대한은 이런 위경만의 영향으로 조직에서는 금수저로 출발한 셈이다.

그런 위대한이 워낙 조직에서 늘어지게 생활하다 보니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에게 우사를 당한 일이 있었고 이로 인해 위대한은 조직 생활이 접히기도 했다.

비록 공인된 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조직에서 2대가 걸쳐 생활했음에도 4년 후배가 조직 창설 멤버의 아들에게 우사를 주는 일이 발생하니 부산 칠성파에 비해 족보가 없다 하겠다.

 

위경만과 초창기 멤버인 홍창수가 조직에서 두목급인데 그런 홍창수 조차 위대한을 커버치지 못했다고 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위대한을 배신하여 최측근에서 배신자로 우사를 준 동생들이 얘네다.

 

https://ilubyou.tistory.com/22

 

부산 배슬기

과거 위대한의 왼팔이자 현재 위대한의 배신자인 부산 88 대가리 배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부산 88년생 대장 대가리는 사실 논쟁이 있다. 박혁준이 대가리라는 사람들은 위대한의 오

ilubyou.tistory.com

그 이야기를 하고 위경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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